Mabinogi

[톨비밀레]Monsieur,

ㄲr람 2025. 2. 4. 00:57

 

 

*G21이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영상을 재생해서 읽으면서 같이 들어주시면 더 좋습니다.

 

 

 

 

 

 

" 음악을 들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

하고 찬연한 두 가지 보석의 빛을 품은 눈동자를 가진 신시엘라크의 장자 르웰린 신시엘라크는 말했다. 그러고는 턱에 손을 대고 잠시 흠, 하고 소리를 내며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그러고 보니 저택에 작은 주크박스가 있었던 듯하군요. 다음 루나사때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시종들에게 찾아두라 명해둬야겠군요. 라며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이야기를 혼자 진행시켜 나갔고 그것이 내가 알반 엘베드도 임볼릭도 아닌 삼하인에 홀로 아무도 없는 성소에 조금 오래된 듯 한 하지만 아주 비싸고 귀해보이는 작은 주크박스를 들고 찾아오게 된 까닭이었다.

나는 그걸 품에 안고 나 밖에 없을 성소 내를 천천히 걸어서 장소와 어우러지지 않는 듯 어울리는 책장 앞에 섰다. 시간이 흘러 색이 바래고 생활감이 남았지만 신기하게도 삭지는 않은 책장에는 이제 예전처럼 커다란 책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지 않았다. 그 책들은 책장 한쪽 귀퉁이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생긴 새로운 공간에는 작고 두껍지 않은 책 몇 권과 사용감이 있는 티팟과 찻잔, 귀해보이는 공예품들이 몇 개 그리고 사과 한 알이 놓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를 만나지 못해 전해주지 못했던가 다음 알반 엘베드에 줘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사과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새로이 생긴 공간에 르웰린에게 받은 주크박스를 내려놓았다. 낭만농장에 둔 것보다 한참은 작은 주크박스는 어딘가 밀레시안들이 들고 다니던 라디오와도 닮아있었다. 

이게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나는 그저 시간을 때울만한 것을 추천받았을 뿐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언제부턴가 종종 그가 없는 날에도 성소에 발걸음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임볼릭마다 만나는 작은 단장에게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주로 이곳에서 하는 것이라곤 그저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남이 보면 취침이라고 불릴만한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잠에서 깨고 어느 순간에는 그 조용하고 공허한 공간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리의 서점에서 몇 권의 짤막하고 쉬운 글로 쓰인 책을 사서 취미에도 없던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가끔씩은 취향에도 없는 차를 내려 마시기도 했다. 성소의 곳곳을 정돈하고 책장의 빈 공간에 둘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공예품을 사서 두기도 했고 책장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돌조각들이 있던 곳을 치우고 따뜻한 색의 러그를 깔았으며 반대편에는 티테이블을  놓았다. 그 두 개는 내가 사 온 것은 아니고 선물 받은 것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내가 이곳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한치에 불만도 없는 듯 오히려 당신이 이곳을 편하게 여기는 듯해 다행입니다. 하고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결국 같은 결말이라 이제 더 이상은 손이 안 갔고 차는 조예가 없어서인지 르웰린이 선물로 주었던 차를 마신 이래로 썩 맘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으며 공예품은 더 이상 놓을 곳이 없었다. 성소의 주인은 내가 바닥에 공예품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아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딱히 좋아해서 모았던 것 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더 들일 의욕이 없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취미로 하는 것들을 물어보고 다녔으나 썩 맘에 드는 답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지난 루나사에 만난 르웰린에게 마침 떨어졌던 찻잎에 대해 물으니 찻 잎은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송하단 말씀을 전하며 수소문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고 했더니 잠시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렇다면 음악을 들어보시는 건 어떻냐고 말해온 것이다.

 

옛적부터 왕족이나 귀족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계층에 상관없이 음악을 즐기는 것은 유서 깊은 취미활동 중 하나였다며 말이다. 거기에 대해 나는 하긴, 성소는 너무 조용하긴 하죠.라고 답해버린 것이다. 성소의 무음이 나에게는 더 안정적이지만 가끔씩은 풀벌레소리조차 나지 않는 공간이 세계로부터 유리된 느낌을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르웰린은 그 말을 듣더니 결과적으로 그다음의 루나사에 나의 품에 작은 주크박스를 안겨주었다. 노래는 자신의 취향대로 일단 넣어두었지만 편하게 바꾸시라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지만 아마 이 주크박스 안의 노래가 바뀌는 일은 없지 않을까 했다. 

주크박스는 볼 줄 모르는 내가 봐도 귀 해 보였다. 주크박스의 몸통부의 나무는 오래된 듯 보였지만 기름칠해 관리한 듯 상처 난 곳 없이 매끈했고 둥글게 깎인 모양의 금판과 금속장식들은 전부 새것처럼 빛났다. 중간부에는 금속판 아래에 3개의 다이얼이 붙어있었는데 다이얼에는 섬세한 세공과 더불어 각기 다른 색의 보석들이 다이얼의 라인을 따라붙어있었다. 보석 안의 그가 말하길 첫 번째 다이얼을 누르면 녹음된 음악이 재생되는 형태인 듯했는데 하지만 나는 매끄러운 표면을 부드럽게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저 비쌀 것 같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손가락으로 귀하고 비싸 보이는 주크박스를 쓸어보고 나서야 다이얼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안쪽에도 기름을 먹였는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다이얼이 눌리고 나서 무언가 달칵하는 소리가 나더니 조금 튀는듯한 지직소리와 함께 유리구슬처럼 울리는 피아노 건반 소리가 들려왔다. 하얗고 하얀 공간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튕기듯 조금 카랑카랑한 피아노 소리는 이내 튀는듯한 지직소리와 함께 어우러진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딴딴, 딴딴 따. 하고 울리는 박자감에 이것과 비슨한것을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데 하고 한참을 골머리를 앓다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 삼하인에 왕성에 찾아갔을 적에 홀에서 열렸던 연회에서 비슷한 음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수많은 색과 하늘거리는 천, 구두소리와 웃음소리 밀레시안들과 다난들이 섞여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섞여 귀가 아팠지. 그래서 빠르게 자리를 뜨려던 찰나 조명이 중앙을 비추고 음악이 바뀌자 삼삼오오 하나둘 서로의 상대와 손을 맞잡고 그 조명아래서 같은 동작으로 발소리를 맞추며 춤을 추었었지. 그러니까 어떻게 했더라.

나는 기억에 어렴풋하게 남은 그들의 동작을 떠올리며 어설프게나마 스탭을 내디뎠다 하나 둘, 하나 둘. 입으로는 음악에 맞춰 작게 딴딴, 딴딴 따. 하고 중얼거리며 상대가 없으니 손은 올리지 않은 채 발이 꼬일까 고개를 숙인 채 내 발만 바라보았다. 그들은 좀 더 즐거워 보였던 것 같은데 나는 기계적이게 동작을 반복하며 나도 그들처럼 잘 추게 된다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서 반발자국을 내딛고 턴.

조심스레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턴을 돌자 발치에는 검은 신발과 하얀 옷자락이 바닥에 닿아있었다. 스탭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익숙한 성소의 주인인 톨비쉬가 웃으며 한 손을 등뒤로 숨긴 채 다른 손은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것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드물게 바닥에 내려와 있네. 였다. 그러고 보니 이 자세는 춤을 권하는 자세였던가? 잠시 손과 톨비쉬를 번갈아보고는 조심스레 나는 손을 내밀었다.

톨비쉬는 내민 손을 조심스레 잡곤 손등에 작게 입을 맞추더니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새로운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흐르는 관악기의 울림이 한 사람 이제 두 사람이 있는 성소에 울려 퍼지며 톨비쉬는 이런 행위가 익숙하다는 듯이 나를 이끌었다.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도 그를 올려다보게 되는 그의 덩치에 살짝 올려다보니 눈웃음을 치며 나를 보았다. 이것도 그 긴 생에 중에 터득한 것 중 하나일까 그는 나를 세우더니 두 손을 정중히 뒤로 젖힌 뒤 허리를 굽혔다. 나도 해야 하나 싶어서 어설프게나마 그의 행동을 따라 했더니 작게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오른손을 잡고 본인의 오른손은 나의 날개뼈 위에 얹었다. 그래서 나도 왼손을 그의 날개뼈에 얹으려 했으나 그의 체격 때문인지 겨우 등언저리에 손이 닿았다. 내가 손을 올린 걸 확인하듯 그를 보자 잠시 눈 맞춤을 하던 그는 천천히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인 나를 배려해 주듯 천천히 뒷걸음으로 박자에 맞추어 한 발자국씩 움직이며 두 바퀴를 돌더니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음악이 새로운 선율로 바뀌자 다시 반대로 세 바퀴를 돌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빙그르르 돌리며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나는 원래 이런 건가 싶어 톨비쉬를 보니 그는 생긋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선 또 음악이 바뀌고 조금 더 빠른 템포의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 더 바싹 붙어서 서로의 숨이 닿을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톨비쉬의 이끔에 맞추어 오르골에 달려있는 작은 도자기 인형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여기저기 성소를 디뎠다. 톨비쉬는 중간중간 흐르는 까랑까랑한 플루트의 소리에 맞추어 나를 가볍게 자신의 팔 안쪽으로 돌리곤 안정적으로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곤 눈이 맞을 때마다 부드럽게 웃었다. 메트로놈 마냥 성소 안에 울리는 두 개의 발소리에 어우러지는 피아노와 플루트, 바이올린, 클라리넷의 소리. 

 

비록 왕성 연회에서 처럼 화려한 대리석 바닥도,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알록다록 길게 늘어지는 색색의 천 자락이 없어도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대화소리도 잔을 부딪치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데도 둘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음악은 점점 고조되어서 내려갈 곳 없이 올라가기만 하더니 톨비쉬는 그러한 음악에 맞추듯 나를 가뿐히 들어 올려 빙글 돌리곤 음악이 끝나는 소리에 맞추어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번쩍 들어 올려져 황당해하고 있는 나를 보며 조심스레 다가와 나의 양 뺨을 부드럽게 모아 쥐더니 이마를 맞추고 콧방울을 맞대고 눈을 맞추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있다가 다시 다가올 때만큼이나 조심스래 물러서더니 나의 한쪽 손을 붙잡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곤 말했다.

 

" 당신의 첫 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무슈(Monsieur) "

"... 무슈가 뭐예요? "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손을 빼야 하나? 아니면 나도 똑같이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냥 바보 같은 질문 밖에 던 질 수 없었다. 그제야 톨비쉬는 내손에서 이마를 때고 나의 손가락에 작게 입을 맞춘 뒤에 빙긋 웃으면서 나에게 답해 주었다.

 

" 나의 주인, 나의 왕, 나의 당신. 당신은 어느 게 좋으십니까? "

" 셋 다 저에겐 꽤나 부담스러운데요. "

" 그러시면 언제나처럼 저의 당신이신 밀레시안인 걸로 하죠. "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 맞다.라고 말하며 가방에 넣어두었던 사과를 다시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 어제 못 만났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줄게요. "

" 늘 저를 생각해 주셔서 기쁩니다. "

 

그러고 보니 무슨 일로 온 거예요? 하고 물으니 톨비쉬는 성소를 보고 있었는데 당신이 보여서 말입니다. 당신의 첫 춤 상대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책장으로 다가가 내가 꽂아두었던 책들과 티팟과 찻잔들, 그리고 공예품을 손가락으로 살짝 훑으며 새롭게 자리 잡은 주크박스를 한번 손으로 쓸어내리더니 주크박스의 재생 버튼을 누르곤 나를 돌아보며 다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 저에게 한 곡 정도는 더 내어 주시겠습니까? 자비로운 당신. "

"... 전 오늘 완전 처음이에요. 못 춰도 뭐라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죠. "

 

나는 딱히 거절해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따지자면 춤 F랭일 거라는 소리라는 거예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톨비쉬는 그 말을 듣고는 작게 웃으며 그러면 제가 감히 당신의 춤 선생이 되어드려도 되겠습니까? 라면서 나를 다시 성소 중앙으로 이끌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톨비쉬는 춤에 익숙해 보이니까 잘 부탁할게요.라고 말했다. 톨비쉬는 조금 약한 척을 하면서 이런, 책임이 막중하네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라며 나의 머리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