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3

[디스아스터] White Christmas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그러고 싶더라고요.  특별한 날이라 그랬던 걸까요?  사람들의 환호와 뒤엉킨 종소리 같은 것들이 저를 들뜨게 만든 걸까요? 이것 또한 기적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올해에도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 날에 바치며. 메리 크리스마스.        그는 아주 오래간 그곳에 서 있었다. 아마 정확하진 않지만 처음 그를 본 것은 아침이었다. 동이 막 틀 즈음 어슴푸레한 빛이 머리 위를 감돌고, 그 복숭앗빛 머리칼이 덜 익은 풋내기의 색을 지닐 때부터. 나는 그저 지나가던 길이었으므로 곧 그를 잊어버렸다. 이른 시간부터 대로에 나와 있다는 것은 나 또한 바쁜 하루를 시작하며 숨돌릴 여유 없이 어딘가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는 뜻이었기에. 응당 오이 샌드위치라고..

Mabinogi 2024.12.09

[디스아스터] [open]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볼까. 유니콘의 뿔 십 그램, 하늘에서만 자란다는 복숭아 두 조각, 그리고 누군가의 미련과 눈물을 담아서. 그렇게 당신께 전해볼까. 담장 위를 가볍게 밟는 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뛰듯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무언가 지나간 자리로 작은 돌들이 떨어지는 듯했으나 그것에 주의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둠 사이로 얼굴을 가린 몇몇이 수상한 인물들이 녹슨 창고를 드나들었다. 음산한 분위기임에도 느슨한 낯이 나타났다. 심지어 몇몇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것이 거나하게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일상적인 일이다. 구룡 반도에서는. 다시금 문이 열리고 닫혔다. 새벽 두 시 십분. 교대 시간이다. 이미 공권력과 손을 맞잡은 채로 움직이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그래도 염치가 있는 건지 중요한 물..

Mabinogi 2024.10.15

[디스아스터] 만찬 미식가

만찬 미식가 두려워 말지어다내가 널 사랑하는 데엔 아무런 이유도 없이그저 맹목적인 마음으로내가 널 사랑하는 데에 이유가 있었다면기필코 다른 감정과 착각했을 테니그러니 나는 너를 무한히 사랑한다아무런 단점도 부끄러워 말지어다           "아휴,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네요." 밀레시안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대충 문질러 닦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기에 짐꾼이 내려놓는 감자 자루가 쓸린 것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물방울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눈도 아니고, 비가 오는 것쯤이야 늘상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는 더 신경 쓰지 않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주방을 벗어나기 전 벽의 거울을 보며 간단히 제 얼굴을 체크한 남자는 흠잡을 곳 없는 다정한 미소와 함께 손님을 맞이했다. "그런가요? 소리를 ..

Mabinogi 2024.09.02